📖 민초의 곁을 지킨 종교 – 한국 무속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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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초의 곁을 지킨 종교 – 한국 무속의 자리
1. 제도 종교와 민간 신앙의 간극
한국 종교의 흐름을 돌아보면 각자의 성격이 뚜렷했습니다.
유교는 가문의 질서와 예법을 다스리는 관료적 이념이었고,
불교는 경전과 수행을 통해 윤회와 사후 세계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기독교 또한 천국과 구원을 강조하며 죽음 이후의 영생을 중심에 두었지요.
도교는 철학과 풍수의 자취를 남겼지만, 중개자 제도는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제도 종교들은 대체로 죽음 이후의 세계, 혹은 질서와 규범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의 병고, 굶주림, 억울함을 즉시 달래주는 기능은 비어 있었습니다.
2. 민중 곁의 무속
바로 이 공백을 메운 것이 무속이었습니다.
무속은 먼 내세를 약속하기보다, 당장 오늘의 삶을 다독였습니다.
아이의 병을 낫게 하고, 장사의 길을 트이게 하며, 억울하게 죽은 자를 달래 남은 이가 편히 살게 했습니다.
굿판에서 불린 소리와 춤은 언제나 "현세 구복(求福)"을 위한 것이었지요.
망자의 굿조차도, 사실은 산 자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3. 무속과 다른 종교의 차이
무속은 늘 직접적이고 행동 중심이었습니다.
무당은 “성경을 읽어라”, “불경을 외워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굿판에서 북을 울리고, 부채를 들고 뛰며 신령을 불러 바로 말했습니다.
“이 일은 하지 마라.”
“저 길로 가지 마라.”
“이렇게 하라.”
즉, 내세의 약속이 아니라, 현세의 길잡이가 곧 신의 언어였던 것입니다.
4. 샤머니즘의 본질
무속의 신령은 절대적 창조자가 아니라, 삶의 터전과 얽힌 존재들이었습니다.
산신, 성주신, 조왕신은 언제나 인간의 살림과 일상 속에 깃든 신이었지요.
그 신령과의 교섭을 통해 삶의 흐름을 읽고, 길흉을 헤아려 처방하는 것, 이것이 무속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속은 단순한 교나 경전이 아니라,
사후가 아닌 현세를 붙드는 종교,
민초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어루만진 종교로 남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슬람이 태어나기 전, 기독교가 싹트기 전, 불교가 자리잡기 전에도,
샤머니즘 속의 신은 나무에, 땅속에, 달과 별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샤머니즘은 그렇게 오래 전부터 인간과 자연, 신령을 잇는 가장 오래된 다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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