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리오행과 격수 기준이 학파마다 다른 이유

본문
🔢 수리오행과 격수 기준이 학파마다 다른 이유
성명학을 공부하거나 이름을 분석해보신 분이라면
다음과 같은 ‘엇갈림’을 한 번쯤 느껴보셨을 겁니다.
“어? 이 책에선 23수가 길수라더니, 저쪽은 흉수라고 하네?”
“어떤 작명가는 원격을 ‘성이름 첫 글자 합’이라는데, 어떤 곳은 그냥 성씨만 쓴대요.”
“획수로 오행을 따지는데… 이건 또 방식이 다르네?”
이 혼란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학파마다 해석 기준이 달라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 사주는 하나인데, 왜 성명학은 갈래가 많을까?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으십니다.
“사주 만세력은 누구나 똑같이 보는데,
왜 성명학은 작명소마다 다 말이 다르죠?”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주는 하늘이 만든 시간이고,
성명학은 사람이 만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사주는 ‘절대 시간’의 학문
사주는 천문과 역법에 기반한 과학적 체계입니다.
태어난 순간의 천간·지지, 절기 구분, 음력날짜, 시간대의 흐름은
누구나 같은 만세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주는 어디서 봐도 결과가 같습니다.
🔹성명학은 ‘사람이 만든 기호 해석’
반면 이름은 후천적이고 인위적입니다.
사람이 한자를 선택하고,
글자를 조합하고,
음과 뜻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를 어떤 논리로 해석하느냐는 철학의 문제입니다.
이름이라는 ‘기호’를 어떻게 풀어낼지는
시대와 문화, 철학적 관점, 명리학 유파, 민속신앙, 심지어 정치적 영향에 따라
끝없이 분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명학은
숫자 하나에 길흉이 고정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이해가 다른 만큼, 기준도 달라지고,
그 기준이 다른 만큼, 수리오행과 격수 해석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 왜 이렇게 다를까? – 뿌리는 하나, 가지는 여러
성명학은 기본적으로 한자 획수와 음양오행 이론, 그리고 명리학적 사고방식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조선, 청나라, 일본, 한국 현대 계보를 거치며 각기 다른 해석 체계로 분화되었고,
이로 인해 수리 체계와 오행 분류법, 격수 구조에서도 다양한 갈래가 생겨났습니다.
🧮 1. 수리오행 기준이 다른 이유
수리오행(數理五行)이란, 획수 숫자를 오행으로 환산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1, 2 = 목(木)
3, 4 = 화(火)
5, 6 = 토(土)
7, 8 = 금(金)
9, 0 = 수(水)
이런 식의 단순 치환 방식은 흔히 사용되지만,
학파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르게 구성되기도 합니다:
기준 | 적용 방식 | 비고 |
1~10 오행 반복형 | 1~10 오행 주기 반복 (11→1, 12→2…) |
가장 대중적 |
홀짝 음양 결합형 | 홀수/짝수로 음양 구분 + 오행 부여 | 일본식 작명 유입 |
삼재/오행 변형형 | 음양 + 오행 + 삼재 개념 결합 | 일부 한국 계열에서 사용 |
즉, 같은 23수라도 어떤 기준에선 ‘금’, 어떤 기준에선 ‘화’로 해석될 수 있는 겁니다.
🧩 2. 격수(格數) 기준도 왜 다를까?
이름을 구성하는 ‘격수’ 역시 4격, 5격, 6격 등 격자 구조를 나누는 기준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집니다.
격수 | 전통 격자 방식 | 위치 조합 방식 | 이름 중심형 방식 |
원격 | 성씨 한 글자 | 성 + 이름 첫 글자 | 이름 두 글자 |
형격 | 성 + 이름 첫 글자 | 성 끝 + 이름 첫 글자 | 성 + 이름 첫 글자 |
이격 | 이름 두 글자 | 이름 가운데 (단독) | 성 + 이름 둘째 글자 |
정격 | 전체 획수 합 | 성 + 이름 마지막 글자 | 전체 획수 합 |
모두가 나름의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이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해석의 관점 차이일 뿐입니다.
🛑 숫자, 너무 믿지 마세요
이런 이유로, 오브엘리에선 숫자 하나만 보고 길흉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23수, 26수, 29수, 34수 같은 이른바 ‘흉수’에 대한 질문이 많지만…
숫자란 기운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이름은 음과 양, 글자의 조화, 오행의 상생,
그리고 쓰는 사람의 삶과 맞물려 작동합니다.
🧘 마무리 – ‘숫자’에만 기대지 말라는 성명학의 교훈
지난 게시글 「흉수에 대한 보완 설명 – 왜 오브엘리에선 강조하지 않았는가?」에서도 밝혔듯,
흉수라는 이유로 이름을 고치는 것은 형식이 본질을 가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어떤 울림을 갖고 작동하는가입니다.
성명학은 수비학이 아닙니다.
숫자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이름의 흐름과 정신입니다.
이름을 숫자로만 보지 마세요.
그 속에는 당신의 삶을 부르는 진짜 ‘소리’가 담겨 있으니까요.
댓글목록0